1009년 2월, 강조의 정변으로 즉위한 현종은 궁녀의 수를 크게 줄이고 음악을 가르치는 교방을 없애는가 하면, 궁궐 안에 가둔 진귀한 새와 짐승 따위를 방생하는 등 사치스러운 궁중 분위기를 쇄신했다. 억울하게 갇힌 백성들을 풀어 주고, 승려의 횡포를 엄금했을뿐더러 특권층들의 사치를 위해 복무하는 기술자들을 귀농시키는 등 민생구제에 힘썼다. 또한 성종 때 폐지한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키거나 대장경의 제작에 착수하는 등 호 불적인 성향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친유 교적 정책에도 관심을 쏟아 최치원 등 선유들을 배향하는 의례를 만들었고, 재위 16년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만났을 때 읍을 하거나 말에서 내려 돌아서 가게 하는 등 품계의 높낮이와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른 문무백관의 상견례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