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과업을 완수한 태조 왕건이 새롭게 맞이한 숙제는 호족들을 관리하는 문제였다. 그가 호족들을 회유하고 억압하기 위한 정책으로 선택한 것은 혼인 정책과 사성제도,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등이었다. 태조는 호족 출신 관료들의 딸을 비로 맞아들임으로써 그들과의 관계를 굳건히 했다. 그 결과 29명이나 되는 후비를 두게 되었다. 또한 왕 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으로 유력자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고려로 귀부 한 신라 경순왕 김부와 같은 공신들에게 출신 지역을 다스리는 사심관 직위를 주어 지역 내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통제했다. 아울러 지방 세력가의 자제를 중앙으로 불러들여 지방을 견제하는 볼모로 삼는 기인 제도를 운용했는데, 이는 신라의 상수리 제도를 본뜬 것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태조는 지금의 평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