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천도를 통해 자신의 권세를 안정적으로 이어간 최우는 고종 36년(1249) 11월에 병사했다. 최우의 병이 깊어지는 와중에 그의 아들인 최항은 군을 통제하고 경계를 강화함으로써 무사히 정권을 승계했다. 권력을 장악한 최항은 자신의 반대파들을 숙청했을뿐더러, 아버지의 측근들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최항은 최우처럼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몽골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정책을 구사했다. 고종 37년(1250) 1월에는 육지로 나오라는 몽골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강화도 북쪽에 새 궁궐인 승천부를 짓기도 했다.
고종 22년(1235)부터 개시된 몽골의 3차 침입은 고종 26년(1239)까지 진행되었다. 이때 경주의 황룡사 9층탑이 소실되는가 하면, 강화도에서는 대장경 조판이 이루어졌다. 이즈음 몽골에서는 황제가 죽고 황후가 섭정을 하는 등 권력 변동이 생겨 전쟁이 소강 국면을 맞았다. 4차 침입 또한 새 황제의 즉위로 시작되었다가 황제의 급사로 멈추었으며, 역시나 황후의 통치 기간을 거쳐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5차 침입이 개시되었다. 고종 40년(1253)의 일이었다. 몽골 황제 헌종은 고려 왕이 최항의 반대로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아 군대를 보냈다. 몽골군은 고려의 강토를 유린하면서 왕이 육지로 나와 자신들을 맞을 것을 요구했다. 고종은 어렵사리 몽골군의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몽골군은 고려의 북쪽 변방에 주둔한 채 물러가지 않았다. 이에 고종은 자신의 둘째 아들을 몽골로 보내 철군을 요청했다. 하지만 몽골 황제는 고종의 개경 환도와 몽골 친조를 철군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고려 조정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자, 고종 41년(1254)에 몽골의 6차 침입이 시작되었다. 이때 몽골군의 만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했는데, 포로로 잡혀간 고려인만 해도 2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몽골과의 타협보다는 대결을 고집했던 최항은 고종 44년(1257) 4월에 숨을 거두었다. 권력은 그의 아들 최의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최의는 권력을 남용하면서 어지러운 정사를 거듭하다가 집권 1년도 안 된 이듬해 3월 26일 별장 김준 등에게 살해당했다. 정변의 주역들이 최의의 측근들을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최씨 정권은 4대 60여 년 만에 종말을 고했다.
최씨 정권이 끝나고 1년 후인 1259년, 태자가 강화를 청하러 몽골로 간 사이에 고종이 숨을 거두면서 왕위 승계에 문제가 생겼다. 이에 김준은 고종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조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태자가 귀국한 이듬해까지 고려의 왕위는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종이 즉위했지만, 고려의 실권은 정변의 주동자인 김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최씨에서 김씨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무인들의 집권은 계속되었던 셈이다. 김준은 최씨 정권과 마찬가지로 몽골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 원종 9년(1268) 조정의 여론이 개경 환도로 기울었을 때, 김준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다가 여름은 개경에서 보내고 겨울은 강화도에서 지내는 절충안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후에도 그는 몽골의 조공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을뿐더러, 몽골 사신도 소홀히 대접해 화를 돋우곤 했다.
가급적 몽골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끌어가려 했던 원종에게 매번 몽골을 자극하는 김준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원종은 김준의 휘하 장수인 임연이 김준의 아들과 땅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것을 알고는 접근해서 꾀어냈다. 원종 9년(1268) 12월, 왕이 병을 빌미로 드러눕자 병문안을 온 김준은 임연 일당의 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정변의 성공으로 권력을 차지한 임연은 원종을 옥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동생인 안경공 창을 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몽골의 개입으로 원종은 폐위된 지 반년 만에 왕위를 되찾았다. 복위한 후 몽골로 들어간 원종은 임연의 세력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임연은 삼별초를 각 지방에 보내 백성들을 피난시키는 등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하다가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임연 사후에 그의 아들 임유무가 권력을 이어받았으나, 원종의 밀명을 받은 이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임연의 다른 아들들도 붙잡혀 몽골로 끌려감으로써, 100년을 유지해 온 무신 정권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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