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득세와 몰락으로 고려 사회가 요동칠 무렵, 고려 바깥에서는 요가 무너지고 북송이 쇠락하는 가운데 여진족이 세운 금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인 격동기에 묘청이란 인물이 뛰어나와 서경천도론을 주창하며 변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서경천도론은 풍수와 도참사상에 기댄 것으로, 지덕이 쇠한 곳에서 왕성한 곳으로 수도를 옮겨야만 왕실과 국가가 융성한다는 주장이었다. 강고한 보수 귀족 세력의 근거지인 개경을 벗어나 새로운 국가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서경천도론 같은 지덕쇠왕설은 개혁 세력뿐 아니라 역대 왕들에게도 호감을 샀다. 묘청을 인종에게 추천한 이는 서경 출신의 문신인 정지상이었다. 이자겸의 반란이 터지고 그 이듬해인 1127년, 척준경을 탄핵해 실각시킨 바 있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