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원래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물건과 서비스의 이동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일종의 '교통경찰'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세계 대공황을 야기한 혼란과 대공항 이후 이어진 정치적 소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브레턴우즈 합의 당시에는 미국이 세계 금 준비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달러를 주요 준비통화로 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해 보였다. 언제든 3.5달러당 1온스의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미국 달러는 금에 버금가는 자산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까지는 미국 달러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이어졌다. 일본,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 많은 나라가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서 성장하고 번영을 누렸다. 세계 경제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큰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위대한 사회'라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 등을 수행하느라 발생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달러를 발행하면서, 달러는 점점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 브레탄우즈 체제를 더는 신뢰하지 않게 된 프랑스가 미국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자, 다른 나라들도 연달아 같은 요청을 해왔다. 곧 미국이 보유한 금의 절반이 다른 나라로 이전됐다. 새로운 경제 체제의 중추였던 미국의 자리는 흔들렸고, 미국 정부는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달러를 비롯한 거의 모든 통화는 통화 사용자들의 신뢰를 기초로 가치가 정해지는 신용화폐가 되었다.
이날부터 브레턴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는 폐지되고, 통화 가치가 외환시장에서 정해지는 자유변동환율제가 시작됐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는 막을 내렸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까지 문을 닫은 건 아니다. 두 기관 모두 오늘날까지 남아 개발을 장려하고 세계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하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부자 나라의 도구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예산의 대부분을 부유한 선진국이 낸 출자, 출연금으로 충당하며, 돈을 많이 낼 수록 많은 의결권을 준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 공공지출을 줄이고 임금 수준을 낮추고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라고 요구함으로써 그 나라를 경제적으로 구속한다는 비판도 자주 받는다. 국제통화기금의 이런 획일적인 조치는 그 나라의 관습이나 요구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브라질, 남아프라카공화국, 중국 등 규모가 큰 일부 개발도상국은 국제통화기금의 구조를 바구기 위해 노력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심지어 중국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대체할 개발 기구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중국은 주변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각각 베이징과 상하이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신개발은행을 설립했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 문제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라는 공동 기금을 마련 하기도 했다.